이음과 스밈

조성환의 ⌜치고나감⌟
(글쓴이 원광대학교 교수 / 서강대 철학박사)

21세기의 삼경민주주의

  • 등록일 202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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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인간의 조건에 주목하여 ‘개인個人’이 아닌 ‘여인與人’의 인간관을 제시했다면, 동학사상가 해월 최시형(1827~1898)은 그 범위를 인간 이외의 존재에까지 확장시키고, ‘삼경三敬’의 윤리를 제시하였다. 여기에서 ‘경敬’은 인간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에 대한 외경과 공경의 태도를 말한다. 그런 점에서 ‘마음의 집중’이나 ‘욕망의 절제’를 강조했던 성리학적 경敬 개념과는 그 방향이 다르다.

 

 최시형은 인간의 조건을 세 차원으로 나누어서 제시하였다. ‘하늘’과 ‘만물’ 그리고 ‘사람’이다. 이 중에서 ‘하늘’의 차원은 ‘천지부모’로, ‘만물’의 차원은 ‘만물동포’로 제시하였다. 천지부모는 ‘나’라는 인간을 낳고 길러준 것은 생물학적 부모보다 더 큰 부모, 즉 자연 세계 전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인간과 만물은 모두 ‘천지’라는 동일한 부모를 모시고 있는 동포가 되는데, 이것이 ‘만물동포’ 사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들에 대한 감사와 외경의 태도를 ‘경천敬天’과 ‘경물敬物’의 윤리로 제시하였다.

 

 최시형은 ‘경물敬物’ 중에서 특히 ‘밥(食)’에 대한 존중을 중시했다. “사람은 밥(食)에 의지한다”거나 “(최제우가 말한) ‘만사를 안다’는 말은 ‘밥 한 그릇’을 가리킨다”는 최시형의 설법이 그것이다. 이후에 시인 김지하는 최시형의 밥사상을 「밥이 하늘입니다」(1975)라는 시어로 재해석하였고, 무위당 장일순은 ‘밥 한 그릇을 만들려면 자연 세계 전체와 인간의 노동력이 함께해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해석은 「한살림선언」(1989)으로 발전되었다. 이렇게 해서 최시형의 사상은 우리에게 전해졌다.

 

 한편, 인류세적 관점에서 보면, 최시형의 삼경 사상은 인간 존재의 세 차원을 말하고 있다. 경천은 인간의 거주지로서의 지구시스템에 대한 외경의 태도를 말한다. 지구온난화는 이것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경물은 인간 종과 다른 종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김대중의 ‘지구민주주의론’(1993)이나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이 문제를 고민하였다. 마지막으로 경인은 다산이 말했던 인간의 조건으로서의 타인에 대한 존중이다. 김대중이 20세기 말에 “인간(경인)뿐만 아니라 만물(경물)의 생존권까지 보장되는 지구민주주의(global democracy)”를 제창했다면, 21세기의 민주주의는 거기에 경천까지 더해진 ‘삼경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