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과 스밈

조성환의 ⌜치고나감⌟
(글쓴이 원광대학교 교수 / 서강대 철학박사)

인간의 본성에서 인간의 조건으로: 개인(個人)과 여인(與人)

  • 등록일 2026-07-15
  • 조회수 330
첨부파일


동아시아사상사는
“누구나 수양을 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하였다. “성인은 배워서 될 수 있다(聖人可學論)”는 명제는 이러한 믿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래서 철학의 내용도 자연스럽게 인간의 ‘본성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인간의 본성에서 성인가학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유교에서는 그것을 ‘인성(仁性)’이라고 하였고, 불교에서는 ‘불성(佛性)’이라고 하였으며, 도교에서는 ‘도성(道性)’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조선후기의 다산 정약용에 이르면 이러한 흐름에 하나의 전환점이 찾아온다. 다산은 인간을 규정하면서 인간의 본성보다는 ‘인간의 조건’에 초점을 두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아가는 존재는 사람이다.”라는 명제가 그것이다. 이것은 한나 아렌트의 개념을 빌리면 “인간의 복수성(plurality)”을 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다산은 인간의 차이성보다는 관계성이나 의존성에 주목한다: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서로 필요로 하고(相須) 서로 도와주며(相資) 서로 교류하고(相交) 서로 접촉하며(相接) 서로 바로잡아 주며(胥匡以生) 산다.” 여기에서 ‘상(相)’은 그 누구도 단독으로는 살 수 없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의존적 관계’에 있음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다산은 이러한 의존적 인간관을 바탕으로 유학의 핵심인 인(어짊)을 새롭게 정의한다: “인이란 두 사람을 말한다(仁者, 二人也). 사람과 사람이 서로 함께 하는 것이다(人與人之相與也).” “인이란 사람을 마주 대할 때 생기는 사랑이다(仁者, 嚮人之愛也).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마주 대할 때(凡人與人之相嚮) 따뜻하게 생기는 사랑의 감정(藹然其愛者)을 말한다.” 여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人與人”(사람과 사람)은 사람은 단독으로는 존재할 수 없고 항상 다른 사람과 함께(與人) 살아간다는 인간의 조건을 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다산의 인간관은 ‘개인(個人)’이 아닌 ‘여인(與人)’이라고 개념화할 수 있다. 다산은 이러한 여인(與人)의 인간관을 바탕으로 도덕의 시작을 인간의 심성에서 인간 사회로 전환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心學)에 갇혀 있던 조선 유학을 마음 밖으로 끄집어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