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PIRIT
이음과 스밈
- 조성환의 ⌜치고나감⌟
- (글쓴이 원광대학교 교수 / 서강대 철학박사)
한국에 철학이 있는가 – 세계 철학에서 한국철학의 위상
- 등록일 2026-03-11
- 조회수 84

지난 2024년 5월, 하와이대학에서 열린 동서비교철학 학술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하였다. 말로만 듣던 일본철학의 위상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제일 놀랐던 것은 미국인 교수 4명이 일본어 “못따이나이”를 주제로 발표하는 섹션이었다. 섹션 제목은 “못따이나이: 일본의 절약 윤리”였다. ‘못따이나이’는 우리말로 옮기면 ‘아깝다’에 가깝다. 일본에서 유학할 때 자주 들었던 말이다. “그냥 버리기엔 못따이나이,” “그런 재능을 썩히는 건 못따이나이” 등등. 그런데 이 일상 일본어 하나만 가지고 서양학자들이 팀을 구성해서 발표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발표를 접하는 순간 우리말의 ‘살림’이 떠올랐다. ‘살림’은 ‘못따이나이’보다 훨씬 철학적이고 포괄적인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라살림, 집안살림, 생명살림과 같이 ‘살림’은 정치와 경제, 그리고 생명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여기에 ‘한’을 붙여서 1985년에는 ‘한살림’ 운동이 시작되었고, 1989년에는 〈한살림선언〉까지 발표되었다. 하지만 ‘살림’이라는 말이 해외의 학자들에게 알려지고 연구되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왜일까? 일차적으로 우리에게 그런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양어의 어원에는 해박한 한국의 철학자들은 정작 우리말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물론 한때 ‘우리말로 철학하기’ 운동이 있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크게 어필하지는 못했다. 한국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철학 자체에 대한 학계나 대중의 관심도 희박했다.
코로나가 막 시작되었을 때 일본의 한 출판사에서 9권짜리 『세계철학사』 시리즈를 간행하였다. 100여 명이 넘는 학자들이 저자로 참여하였고, 간행까지 2년 여의 시간이 걸렸다. 이 기획의 의도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서구 중심이 아닌 세계철학사의 서술. 둘째, 세계철학으로서의 일본철학의 가능성 모색. 그래서 일본철학에 대한 비중이 높다. 전 9권 중에서 평균 한 장(章)씩은 일본철학 관련 내용을 다루고 있다. 반면에 한국철학 관련 부분은 단 한 개의 장(章)에 머물고 있다. 또 하나 특징적인 점은 가급적 젊은 학자들에게 집필을 부탁하였다. 이 기획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설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리즈를 접하는 순간 “과연 우리나라는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일본철학의 세계적 위상이 높은 것은 이러한 노력을 부단히 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K-팝이나 한류의 붐으로 국내에서도 이제 K-철학에 대한 요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철학을 세계에 알리는 작업은 이제부터이다. 그리고 그 출발은 우리 자신이 한국철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