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PIRIT
옛것과 새것
- 한재훈의 ⌜들여다봄⌟
- (글쓴이 성공회대학교 교수 / 고려대 철학박사)
스승의 날, 스승 퇴계를 생각하다
- 등록일 2026-05-07
- 조회수 207

퇴계(退溪) 선생의 만년 고제인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1541-1596)이 스승 퇴계의 언행을 기록한 『계산기선록(溪山記善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실려 있다.
“경오년(1570) 12월 4일 오후. 선생께서는 제자들을 보고 싶어 하셨다. 자제들은 심리적으로 동요하실까 걱정이 되어 그만두시기를 청했다. 하지만 선생께서는 “삶과 죽음의 즈음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 마침내 윗옷을 걸치시고 여러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평소 그릇된 식견으로 제군들과 강론을 했는데, 이 또한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계산기선록(溪山記善錄)』 중에서)
경오년 12월 4일은 퇴계 선생이 운명하기 나흘 전이다. 몇 달 전부터 병석에 누워 있던 퇴계 선생은 이날 임종을 준비했는데, 이 과정에서 제자들을 만나고 싶어 했다. 제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스승으로서 제자들과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퇴계 선생은 어릴 적 가르침을 받은 숙부 이외에 특별한 스승이 없었다. 스승이 없다는 것은 모르는 것을 물을 곳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깨달은 바를 검증할 곳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퇴계 선생은 이런 학문적 결핍을 보완하기 위해 일생 열린 자세를 견지했다. 자신의 생각과 글에 대한 토론을 마다하지 않았고, 심지어 제자들의 지적조차 감사하게 반영했다.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과의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辨)’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열린 자세는 부단한 자기 성찰과 오류 발견을 전제로 한다. 한 명의 학자로서도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이를 시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스승이라면 어떻겠는가? 하지만 퇴계 선생은 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스승으로서도 늘 열린 자세를 잃지 않았다. 자신이 가르친 바에 한 치의 오차라도 있다면 반드시 이를 찾아내려 노력했고, 찾아냈다면 반드시 수정된 가르침을 주었다. 그랬기 때문에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임종을 앞둔 퇴계 선생은 제자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의심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생전에야 열린 자세로 자신의 오류를 찾아 수정해 주면 되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시간이 없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날 제자들을 불러 “평소 그릇된 식견으로 제군들과 강론을 했다”는 미안함 가득한 고백을 했다. 즉, 스승의 가르침이라고 맹신하지 말고, 이제는 각자 오류를 찾아 수정하라는 마지막 가르침이었던 셈이다.
한평생 자신이 알고 있는 참이 거짓일 수 있다는 오류 가능성을 염려하면서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스승의 숙명을 “쉽지 않은 일”이라는 말로 표현한 퇴계 선생은 나흘 뒤 세상을 떠났다. 이런 스승을 그의 제자들은 어떻게 기억했을까? 제자 문봉(文峯) 정유일(鄭惟一, 1533~1576)의 다음과 같은 술회가 그 답을 대변한다.
“그 순수한 자질과 정밀한 식견, 크고 굳센 지조와 높고 밝은 학문, 도(道)는 그 자신에 축적되어 있고 말씀은 영원토록 후대에 드리우며, 공로는 앞선 성인들을 빛나게 하고 혜택은 후세의 학자들에게 흐르도록 한 분을 우리 동방에서 찾는다면 (우리 선생님) 한 분뿐이시다.”(『퇴계선생언행통술(退溪先生言行通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