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과 새것

한재훈의 ⌜들여다봄⌟
(글쓴이 성공회대학교 교수 / 고려대 철학박사)

예를 사랑해 양을 보존한다

  • 등록일 20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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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국에서는 매달 초하루가 되면 임금이 백성들에게 월력(月曆)을 반포했다. 그런데 임금은 양을 희생으로 바치는 제사를 먼저 거행한 다음 월력을 반포했다. 임금은 자연의 법칙과 백성들의 삶이 만나는 월력 반포의 의미를 매우 신성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반드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엄숙한 예식에 따라 제사를 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임금은 더 이상 제사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고 관리들이 희생양을 바치는 관행만 남아 있었다. 이를 본 공자(孔子)의 제자 자공(子貢)은 임금이 직접 참여하지도 않는데 굳이 희생양을 바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공자는 “너는 그 양(羊)을 사랑하느냐? 나는 그 예(禮)를 사랑하노라.”라고 했다.(『논어(論語)』·「팔일(八佾)」) 이를 ‘애례존양(愛禮存羊)’이라고 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현실성·유용성·효율성 등을 최고의 덕목인 양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어떤 것도 우리가 발 딛고 숨 쉬는 현실에 기반해야 하고, 우리의 삶에 쓸모가 있어야 하며, 이왕이면 작은 노력으로 큰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그리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가을에 추수를 많이 했다고 해서 닥쳐올 춘궁기는 생각하지 않고 곳간의 양식을 모두 먹어 치워서는 안 되고, 겨울에는 털옷만이 유용하다고 하여 장롱 속의 모시옷을 모두 내다 버려서도 안 되며, 땀 흘려 일하기보다 남의 돈을 뺏는 것이 낫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올바른 현실성은 과거와 미래가 고려된 것이어야 하고, 유용성은 먼 눈과 긴 호흡으로 판단한 것이어야 하며, 효율성도 윤리나 도덕과 같은 숭고한 인간적 가치를 담은 것이어야 한다.

 

 

공자와 그의 제자인 자공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이에 관한 것이다. 이미 그 본질이 퇴색되어 버린 관행을 위해 굳이 양을 희생시키지 말고 월력만 발표하면 된다는 것이 자공의 생각이었다. 그것은 매우 현실적이고 유용성을 중시하며 효율성에 입각한 것이다. 그러나 스승 공자의 생각은 달랐다. 임금이 백성들에게 월력만 달랑 전달해주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와 백성의 삶이 소통하는 것을 신성하게 여길 줄 아는 ‘위민(爲民)’의 정치가 양을 바치는 제사에 담긴 본질임을 공자는 알았다. 그랬기 때문에 껍데기일망정 양을 바치는 예식을 보존하는 것이 곧 위민(爲民) 정치의 불씨를 보존하는 것이며, 폭력과 전쟁이 만연한 세상에 참다운 정치의 희망을 간직하는 것이라고 공자는 믿었던 것이다. 오늘의 양(羊) 한 마리를 아끼겠다고 ‘오래된 미래’일 수 있는 예(禮)를 쉽게 버리는 것은 나중에 한탄해도 돌이킬 수 없는 어리석은 일이다.